떠나지 않은 자, 모두 유죄?!!!

해외여행 붐!!! 이에요


또 성큼 방학이 찾아 왔다. 휴식이란 취하면 취할수록 취하고 싶은 매력덩어리라 가는 방학은 붙잡아도 오는 방학은 마다하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벌써 다섯 번째 맞이하는 방학이라 무덤덤해져서 그런지 나는 별로 들뜨지가 않는다. 오히려 느끼는 것은 방학에 대한 부담감. 지난 네 번의 경험상 2개월 반이라는 대학의 방학기간은 모범생인 우리가 계획없이 마냥 놀고 먹고 자기엔 어딘가 분명 죄책감드는 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방학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영어 공부, 독서, 계절 학기, 아르바이트, 인턴, 운동 등등 못하고 안 해서 그렇지 할 것은 많고도 많았다. 그 중에서도 단연 화제는 ‘여행’, 여행 중에서도 ‘해외여행’이었다. 하긴, 긴 방학, 무료하지 않으면서도 건전하게 그리고 ‘폼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으로 해외여행만한 것이 없기는 하지.


절찬리에 판매중인 엄정화의 뉴욕일기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누가 해외여행 다녀왔다 하면 우와우와 감탄사를 연발하며 엄청 희귀한 체험이나 한 사람처럼 대접했었는데, 이제는 주위에 여권 한 번 만들어 보지 못한 희귀한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것은 비단 방학 중인 대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만 살펴보면 온 나라가 해외여행 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붐’이라고 일컫기에도 어색할 만큼, 이미 다들 해외여행이라는 것을 일상적이고 익숙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별히 디지털기기의 발달은 여행의 흔적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번거로운 일을 수월하게 만들어 준 동시에 여행 경험을 공유하는 가장 간편한 매개를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서, 해외여행이 정서적으로 일반화되는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 측면이 있다.


싸이월드 일촌들의 해외여행사진폴더와 서점 도서대에 즐비한 여행에세이들이 말해주듯 확실히 해외여행은 유행 중이다. 유행이라면 나도 도전해 보고 싶어진다. 막연하긴 한데, 왠지 나도 한번은 다녀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떠나지 못한 자? 떠나지 않은 자의 하소연


대학에서의 첫 방학. 외국여행을 준비하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왔을 때, 부끄럽게도 그것은 내게 일종의 충격이었다. 외국여행길에 오른 대학생의 모습을 상상 못해서가 아니었다. 청바지에 흰 티를 입고 커다란 백팩을 맨 기본 차림새, 젊음을 과시하듯 간단한 먹을거리로 허기를 채우면서도 이국적인 풍경에 심취해 두 눈만은 초롱초롱한, 여행 중인 어느 대학생의 모습이야 학창시절부터 줄곧 상상해본 익숙한 것이었다. 그것은 대학생이 되면 하고 싶은 일 10가지 중에서도 꽤 높은 순위에 랭크되어 있었던 과업, 고딩의 로망이었다. 따라서 나로선 유난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친구들은 떠나고 나는 떠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서러웠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저것 여행준비로 분주해 하며 출국일만 기다리는 친구들 모습 보는 마음은 착잡했다. 내겐 없는 ‘외국에 사는 친척’ 네를 숙소로 잡고, 청바지 흰티 백팩 대신 럭셔리 선글라스와 커리어를 마련하는 걸 볼 땐 더더욱 그랬다. 상대적 박탈감이 어마어마했다. 그리하여 그 해 여름, 나는 한국에 남아 ‘돈이 없어’ ‘세상은 불공평해’ 이 두 문장 넋두리로 의기소침해진 자신을 위로했다. 중경삼림을 보면서 홍콩을 상상하거나, 냉정과 열정사이를 보며 피렌체를 떠올리는 것으로 떠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야했다.


상상으로 떠나는 홍콩여행

그 후로 몇 번의 방학이 지났을 때, 과외다 아르바이트다 해서 모은 돈이 제법 큰돈이 되어 있었다. 여행목적으로 모은 돈이 아니라 망설여지긴 했으나 굳이 떠나겠다면 여행경비로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돈이었다. 그래 그럼 어디 한번 계획을 세워 보자. “예전부터 유럽이나 미국 이쪽 보다는 동양권이 끌렸으니까……여행장소는 중국이나 일본으로? 그나저나 누구랑 가지? 혼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첫 여행이라 어쩐지 엄두가 안 나네. 비행기 표나 여권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거지? 여행사에 연락을 해 봐야 하나. 어느 여행사가 좋지?……” 따지고 생각해서 계획을 짜 나가는 중에 벌써 피곤해졌다. 나는 결국 이번 기회에도 한국에 남는 편을 택했다. 천성이 그런 탓도 있지만, 처음 하는 일을 혼자 하려다 보니 지치고 금세 귀찮아졌기 때문이다. 외국여행을 하고 싶은 의욕이 귀찮음을 앞서지 못한 것이 결정적 이유였다.


‘돈’ 때문에 좌절했었는데, 막상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엔 ‘귀찮음’이 문제였다. 그토록 꿈꿨던 첫 외국여행에다 흔하지 않은 기회라 생각하니, 후회 없을 만큼 만족스러운 여행으로 만들어야한다는 부담감 또한 은근 압박스러웠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다. 여행의 목적이 단순히 여기와는 다르고 새로운 곳에 발 들이고 싶은 이유에서라면 내게 외국여행은 약간 사치 같았다. 그렇담 이태원 정도로 충분했다. 평소 정말로 가고 싶었던 곳이라든가 영화에서든 여행담에서든 특별히 맘에 들었던 곳을 들르고 싶었다. 남들 다 가는 고만고만한 장소에서 고만고만하게 사진 찍어 돌아오는 여행은 싫었다. 여행을 조금 미루더라도,  얼마간 외국여행 한 번 못해본 우물 안 개구리 취급을 받더라도 나만의 특색있는 (유별나거나, 튀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행을 계획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은 다섯 번째 대학방학을 맞이한 지금도 마찬가지고, 계획이 완성될 때까진 지겹더라도 중경삼림이나 냉정과 열정 사이로 만족할 작정이다.


여행도 악세사리?

‘한 번 여행’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여행의 ‘진정한’ 의미, 이런 말은 살짝 느끼하기까지 하다. 드라마나 영화 속 누군가처럼 사연 가득한 가슴 속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낯선 외국으로 여행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려구. 외국으로의 여행에 지나친 감동을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어쩜 있을지도 모르는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시킬 여지가 있다. 여행엔 단순 ‘오락’적인 측면도 있으니까. 여행이란 지극히 사적인 활동이므로 스스로에게 값진 경험이 되었다면 그것만으로 성공적인 여행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단지 트렌드에 맞춘 세련된 활동의 일환으로 남들 다 하니까 덩달아 떠나는 여행이라면 한번쯤 반성해 봐야 하지 않을까.

최근의 해외여행 풍조에서 과시적이라는 느낌을 받는 이는 나뿐인 걸까 생각해 본다. 당사자의 만족도와는 별개로 ‘좋았던 여행’을 증명해주는 것은 더 멋지고 더 센스있는 사진, 혹은 희귀하고 값비싼 쇼핑 물건인 것만 같아 씁쓸하다. 어쩜 그 전에 이러한 것들이 당사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지도 모르겠다. 컬러풀한 여행 에세이, 쇼핑을 위한 여행책자들아 우리들의 허영심을 그만 자극하길 바란다.

늠름

2007/08/13 15:05 | 칼럼/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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